Rhike 이야기/Chapter & 기록

손으로 일하는 삶의 문턱에서

Rhike 2025. 12. 26. 17:35

 


The Dev-Mechanic

웹 퍼블리셔에서 자전거 정비사로

이 시리즈는
오랜 시간 웹 퍼블리셔로 일하던 제가
자전거 정비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 선택 이후의 시간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화려한 성공담이나 빠른 결과보다는
일의 방식이 바뀌고,
몸의 감각이 달라지고,
생각의 방향이 조금씩 이동하는 과정을 담고자 합니다.

 

각 챕터는 하나의 전환점(Chapter) 이고,
그 사이사이는 일상의 기록(Bridge Episode) 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이직 이야기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속도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Chapter 03. 키보드 대신 공구를 잡다

 

 

 

 

 

 

 

: 숫자 대신 감각으로 하루를 기억한다는 것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시험을 통과했다고 해서 곧바로 정비사가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요. 다만, 그때부터 하루를 바라보는 기준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실에 있을 때는 하루를 숫자와 일정으로 기억했다면, 이제는 손에 남은 감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코끝에 남은 기름 냄새, 렌치를 돌릴 때의 미세한 저항, 체인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는 순간의 경쾌한 소리. 아직은 익숙하다고 말하기엔 이르지만, 그런 장면들이 하루의 끝에 선명하게 남기 시작했습니다.

 

 

 

머리의 이해와 몸의 숙련 사이

모든 것이 느렸습니다. 생각보다 손은 말을 듣지 않았고, 한 번에 끝낼 것 같던 작업도 몇 번씩 다시 확인해야 했습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익히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습니다. 교육장에서 배웠던 순서와 원리를 떠올리며 움직였지만, 실제 작업대 앞에서는 늘 한 박자씩 늦어졌습니다.

 

예전에는 문제가 생기면 서비스의 구조부터 그려보는 방식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원인을 직접 만져보고 확인하려고 애쓰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확신보다는 확인에 가까운 단계였지만, 이 변화만큼은 분명했습니다.

 

 

속도라는 착각을 넘어 '정확함'으로

정비를 하며 가장 먼저 깨달은 건 속도에 대한 착각이었습니다. 서두르면 빨라질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놓치는 게 더 많아졌습니다. 오히려 천천히 들여다볼수록 작은 이상이 눈에 들어왔고, 그 과정에서 ‘정확함’이라는 나만의 기준이 조금씩 생겨났습니다.

 

이 변화는 비단 자전거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일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결과물을 빨리 내는 것보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로 이 작업을 대하고 있는지를 더 자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끝났다’는 말도 예전처럼 쉽게 입 밖으로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걷기 시작하다

가끔은 예전 일을 떠올립니다. 익숙했고, 편했고, 누구보다 잘할 수 있었던 일. 하지만 요즘은 하루가 끝나고 손에 남은 이 어색한 피로감이, 내가 완전히 다른 영역에 들어와 있다는 확실한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아직 저를 정비사라 부르기엔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건, 이미 이전으로 돌아가긴 어려워졌다는 사실입니다. 

 

 

 

 

 


 

다음 이야기 미리보기

  • Chapter 04: 이 선택을 실제 ‘일’로 이어가기 위해 고민했던 현실적인 문제들, 그리고 정비사라는 직업 앞에서 마주하게 된 판단의 순간들에 대해 기록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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